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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심(農心)서산시의회의원 장갑순
  • 전인철 기자
  • 승인 2022.03.0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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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의회의원 장갑순

꽤 눅눅한 하늘이었다.

나름 반듯하게 늘어선 어린 벼 사이로 짧게 시작된 빗줄기는 점차 길게 이어지며 논두렁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눈을 빼꼼히 치켜뜬 청개구리는 수줍은 듯 토라져서는 물결 사이로 유유히 사라졌지만, 그날 밤공기를 독차지했다.

그날 새벽, 처마 끝에 맺힌 빗방울이 떨어질 찰나,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신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문지방 고양이들은 화들짝 놀라 마당으로 제 몸 하나 숨기기에 바빴지만, 철없는 강아지는 마냥 좋다고 꼬리를 연신 흔들어 댔다. 

그렇게 시작된 여름의 기억은 아버지의 땀 냄새가 옅어질 즈음에서야 끝이 났다.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길게 이어진 수매 차량 중간중간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긴 무료함을 달래주었지만, 너른 마당에 정성스럽게 널려 놓은 곡식은 아들과 딸들 것이라 그런지 시도 때도 없이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겨울이 되면서 논은 우리에게 좋은 놀이터가 됐다. 

찬 바람에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썰매며 비료 포대며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미끄러져 나가면서 서로 얽혀 웃고 떠들어 댔다.

남몰래 내린 눈이 땅에 모두 스며들 즈음, 다시 이어 지는 기억들. 논은 그렇게 유년 시절 기억의 전부가 됐고, 지금껏 논을 지키며 살아온 필자는 지금의 정부가 내세우는 '경쟁' 이라는 단어가 왠지 어색하고 낯설다.

시장격리는 쉽게 말해 정부 매입이다. 변동직불제가 폐지되면서 쌀가격 안정화를 위해 제도화 됐다. 

농민들은 크게 기대했었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낮은 낙찰가격, 대규모 유찰사태, 쌀값 폭락은 농민 결사대를 서울로 상경시켰다.

정부 고위 관료는 생각했을 것이다. '쌀 가격도 경쟁이지. 경쟁이 없는 산업이 어디 있으랴' 그러고는 역공매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과는 최저가 입찰 보기 좋게 적중했다.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의 피를 이어 받은 격조 높은 어르신들마저도 반백 년 어린 수험생들처럼, 눈치작전을 펼쳐야만 했다.

수술 날짜를 결정하는 주치의는 환자의 상태를 두루 살펴야 한다.

환자의 몸 상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의(名醫)라도 준비가 안 된 환자의 처진 배를 가를 수는 없다. 

결정했다면 집도는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쌀값 하락이 예상되고 시행 요건이 충족됐다면 지체 없는 시장격리로 안정된 가격을 보장해야 한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가격에서 시행하는 시장격리는 가격 하락을 위한 경쟁이 아닌가? 인심 좋게도 입찰 물량은 최소 100톤. 농민들의 참여 보장이라는 말은 덤이다. 

이번 시장격리 결과 낙찰 물량의 65%는 농협 물량이라는 사실에 일반 농민들은 한숨이 절로 난다.

낙찰가는 63,763원(조곡 40kg/가마)으로 결정. 부대비용을 제외하면 산지 가격보다 한참 낮은 60,000원대. 이마저도 계획했던 물량의 27%에 달하는 5만 5천 톤은 유찰됐다.

합리적인 소비라고 하나? 물건은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는 인터넷 최저가를 찾는다.

같은 물건도 남들보다 비싼 값에 구매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분노케 한다.

생명 산업인 쌀도 이런 운명을 맞아야 하나? △최저가 입찰 방식 변경, △시장격리 요건 형성 즉시 실시, △유찰된 물량 시장격리 등 보호가 필요한 산업을 제때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나이 탓일까? 

요즘은 방금 전 생각했던 일을 잊어버리는 날이 유독 많아졌다. 

그 일이 본인과 관련된 일이면 그래도 나을 텐데,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든지, 남들과 연관된 일이라면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요 몇 년 사이 일이다.

그래도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 눅눅했던 그해 여름. 아버지 땀의 열기, 열기가 잦아들 때쯤 맡았던 냄새는 그해 보았던 담배 연기처럼 아련했고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겨울 놀이는 논이라는 무대 속에서 각인된 추억이 되었다.

이제 곧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온다. 

봄은 항상 겨울을 보기 좋게 몰아냈다. 봄의 향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할 것이다.

농민들은 오늘도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한다. 산과 들, 그리고 땅은 그러한 농민들을 순수하게 맞이할 것이다. 

아무런 경쟁 없이 노력한 만큼 마음껏 거두시라는 듯... 그렇게 말이다.

전인철 기자  ds3b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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